제목 | 판서골의 나뭇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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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 민속/전설 |
내용 | 판서골의 나뭇꾼 미산면(嵋山面) 삼계리(三溪里)냇물이 두 개울로 흘러와서 세갈래로 갈라지는 아늑한 자리에 한 아낙네가 어린아이를 업고 내려와서 머리에 무겁게 이고 온 짐을 내려놓고 땀을 훔친다. 비록 남편은 사화에 걸려서 죽었지만 아들 하나가 있어서 죽지를 못하고 한에 서려서 정처없이 떠난 아낙네는 하늘을 바라보다가 먹구름이 잔뜩 찌푸리고 있는 것을 바라보고 나무 그늘을 찾다가 가까운 굴속으로 자리를 옮겼다. 하루 저녁을 바람속에서 보낸 아낙네는 이튿날부터 피나는 노동으로 이곳에 정착하게 된다. 즉 먼저 나무를 베어다가 산막을 짓고 낮에는 먹을 것을 찾아 마을로 내려 가서 닥치는 대로 일을 해 주고 밥을 얻어먹고 쌀을 가지고 와서 첩첩이 쌓아 두었다가 돈으로 바꿔서 돈을 쌓아놓았다. 어떻게 하던 아들 하나를 대성시키겠다는 꿈에서 아들은 네 살때부터 글을 가르쳤고 다섯 살에는 지게를 장만해줘서 나무를 하게 했다. 이런 세월이 그럭 저럭 10여년이 흐르자 아들은 서당에 다녔고 어머니는 늙어서 얼굴에 주름살도 늘었지만 그런대로 넉넉하게 살게 되었다. 아들의 일과는 아침에 나무를 한짐 해오는 일이었고 낮엔 서당에 다녀 와서 다시 나무를 한짐 해다가 담밑에 싸놓는 일이었다. 하루는 서당에 다녀와서 나무를 하러 가까운 산에 올라갔다가 목소리가 고은 새소리를 한참 듣다가 그 새를 발견하고 새를 쫓아 산중에 들어갔다가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그래서 한참 어둠을 헤매다가 밤이 깊어서야 먼곳에서 불이 깜박거리는 것을 발견하고 그쪽으로 찾아가선 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허기지고 피곤해서 숨가쁘게 문을 두들기자 한참만에 문을 열고 사람이 나왔는데 그것은 아주 젊은 색시였다. 그가 길을 잃었으니 하루저녁만 묵어가게 해달라고 말을 하자 대꾸도 하지 않은채 차리에서 일어나서 안으로 들어가서 밥상을 들고 나와서 곁에 차분히 앉더니 술잔을 들고 술을 따른다. 그는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고맙다고 치사를 하자 「어머니와 단둘이서 살고있어요. 마침 어머니는 한양에 가셔서 혼자있어요」 하곤 다정하게 술을 따르는데 그날 저녁은 그래서 그들은 지난 집안 이야기를 하 며 하룻밤을 세웠다. 그 이튿날 그는 곧장 산을 넘어 집에 왔지만 그날부터 어쩐일인지 그여자가 마음에 걸려서 글공부가 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글을 읽다가도 그여자 생각을 해서 한숨을 쉬곤 하였는데 하루는 어머니에게 자기의 고통을 털어 놓았다가 그만 어머니의 화를 부르게 되었다. 「과거부터 선비는 지조에 산다 하였느니라 지조는 대대로 내려오는 지조(志操)일 뿐만이 아니라 한 가문의 지조가 되어야 하느리라. 하물며 아버지가 의에 살고 정사를 바로잡으려다가 죽임을 당했거늘 아버지 뒤를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 그것이 어려워 한숨으로 세월을 보낼랴 함은 이 어머니의 뜻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특히 너의 아버지에게 죽엄을 준 그자도 그후 사화에 걸려 죽었지만 그 도당은 아직도 살아 남아 있 느니라. 그놈이 죽어서 시원하다마는 그놈의 딸이 어멈과 함께 성주산 기슭에 들어왔다는데...」 어머니말이 끝나기전에 어머니는 눈을 부릅뜨고 입을 부르르 떤다. 그래서 그날부터 그는 색시가 바로 아버지에게 죽엄을 준 사람의 딸이라고 생각하고 잊어버리며 글공부에만 열을 올렸다. 그후 그는 다음해에 과거를 보려 한양에 올라갔다. 나 불과 이십을 갓넘은 사람으로서 과거에 임하여 떳떳하게 합격을 하게 되고 벼슬길에 오르게 되었다. 그는 벼슬길에 오르기전에 집으로 내려왔었다. 이제는 까마득하게 잊었지만 어쩐지 한 산을 바라보니 나뭇꾼이였을 때 만났던 색시 생각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그는 오늘밤 어머니와 여기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한양에 올라가선 다음번엔 어머니를 모셔가야겠 다고 생각하고 스르르 눈을 감았다. 그가 눈을 감고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 한 도승이 나타났다. 「원수를 사랑하라. 이 나라엔 이게 없어서 항시 정사가 어지러우니라. 내일 네가 떠날 때 너보다 앞질러가는 초립동이 있을 것이다. 그 초립동이 바로 네 가 일생을 배필로 할 한 색시가 남장한 것이니라. 놓치지 말고 꼭잡고 내일부터 마음에 새겨두고 꼭 품속에 안도록 하라」 도승은 눈을 부릅뜨고 무섭게 말하곤 사라졌다. 그 이튿날 그는 길을 떠났다. 집을 떠나서 십리도 못갔는데 산길에서 웬 초립동이 길로 나와서 앞질러 갔다. 그는 어제밤 꿈 생각을 하고 바삐 걸어서 가까이 가서 얼굴을 슬쩍 쳐다봤다. 비록 남장은 하였지만 몇 년전에 밤에 만난 그 색시였다. 「보시오 걸음을 멈추시오. 당신이 꿈속에 말하던 그 색시일까?」 하곤 선뜩 쳐다보자 「도련님 어제 저녁에 한 도승이 나타나서 길을 떠나라 하시기에 정처없이 나왔소이다.」 그래서 그들은 다시 몇 년만에 만나게 되고 부부가 되었다 한다. 그는 벼슬길에서 차츰 승진하여 판서까지 지냈으나 어찌도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는지 그에겐 적이 없었다. 그는 늙어서 아내와 함께 이 마을에 와서 살으니 그가 사는 마을을「판서골」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