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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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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머리

봉황산의 남쪽 산기슭을 말하는 지역이다. 과거에는 현 보령 시가지가 모두 논이었고 산기슭에만 사람들이 거주했다고 한다. 갈머리는 대천여중 뒤를 경계로 동쪽을 윗갈머리 서쪽을 아랫갈머리 라고 한다. 여지도서에는 한자의 음과 훈을 빌려 葛頭里(갈두리)로 표기하였다.

갯뻘모탱이

대천 방조제 준공 이전에는 보령시에서 가장 서쪽으로 서해바다와 만나는 곳이다. 뒷산 밑으로 가옥이 극히 조밀하게 입지해 있다. 이곳의 주민들은 몇가구를 제외하고는 대천 간척지 건설 이후 청라저수지 수몰민 등이 간척지 농사를 짓기 위하여 이주해 온 사람들이다. 이곳에는 해방 직후까지 많은 소금가마가 있어 소금을 구웠다. 당시에는 솥에 바닷물을 붓고 불을 때서 소금을 굽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농도가 진한 소금물을 얻기 위하여 조금때 노출되는 갯펄을 쟁기로 여러번 갈아 말린 후 갯펄 군데 군데에 넓이 3-4 평 깊이 6자 정도의 구덩이를 파고 나무를 걸쳐놓은 후 그 위에 나뭇가지 거적을 올려놓고, 쟁기질하여 말려놓은 개흙을 올려 놓았다. 사리때가 되어 물이 많이 들어오면 바닷물을 막아놓고 계속해서 마른 개흙 위예 퍼부으면 바닷물이 마른 갯펄을 통과하여 구덩이 속에 고이게 되므로 보통 바닷물 보다 훨씬 높은 농도의 바닷물을 얻을 수 있었다. 이렇게 얻어진 바닷물을 길어다 솥에 넣고 불을 때어 소금을 구웠다.

관촌 (冠村)

1960년대 대천면 대천리를 신평, 신시, 구시, 관촌의 4구로 구분하면서 붙인 이름이다. 지금도 옛 타성으로 아랫갈머리를 칭할 때 사용한다. 어원은 갈머리에서 생겼을 것으로 생각된다. 갈머리의 갈을 갓으로 생각해서 한자로 표기한 것으로 생각된다.

군두리재

소미에서 주교면 신대리로 통하는 대천시와 주교면의 경계에 해당하는 낮은 재로 장항선 철도, 국도가 통과하고 대천 간선도로 개통과 함께 3거리가 되어 교통의 요지가 되었다. 옛날 고려말 김성우 장군이 왜구를 무찌를 때 군인들이 들어왔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는 전설이 있다.

독자굴

대천여고 위쪽으로 현 서오 아파트 뒤쪽이다. 옛날 독을 많이 구워서 그렇게 불린다고 한다. 지금도 주변 산사면에는 독을 굽던 가마터가 많다고 한다. 옛날에는 집이 3채 뿐이었으며 물이 없어 대천여고 옆에 있는 샘에서 물을 길어다 먹었다고 한다.

뒷산

소미와 갯뻘 모탱이 사이에 있는 산으로 높이 40.4m에 이르며 북쪽 산봉우리에는 삼각점(높이 39.6m)이 있다. 대천시의 발전과 함께 상당한 높이까지 건물이 들어서 있다.

봉제산

봉황산을 부르는 다른 이름이다.

부엉재산

독자굴에 사는 사람들이 봉황산을 부르는 이름이다. 부엉재의 우뚝우뚝 높은 봉우리가 9개라 한다. 지금의 봉황산이 과거에는 부엉산으로 불렸는데 한자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鳳凰山(봉황산)으로 표기한 것이 아닌가 한다.

소미

대천여고를 중심으로 한 양쪽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를 소미라고 한다. 한자로는 小美(소미)로 표기하기도 하나 음을 빌어 한자로 표기한 듯하다. 마을 곳곳에는 좋은 샘물이 있는데 특히 현재 영복식품 뒤에 있는 샘은 대동샘으로 좋은 물이 많이 나와 여러 집에서 식수나 생활 용수로 사용했었으며 현재는 영복식품에서 두부를 제조하는 데 사용한다. 대천여고가 들어선 후 여고 학생들의 자취방이 많이 만들어져 있으며 양지편, 응달, 독자굴로 나누어진다.

솔봉재

현 동부아파트 아래로 갈머리주유소 뒤이다. 주변보다 약간 높았고 소나무가 많이 있어 그네를 매고 놀기도 했다고 한다. 소나무가 있는 좀 높은 곳이라 해서 솔봉재로 부른다.

쌍바위 (雙岩)

현 대천여중 자리이다. 큰 바위가 두 개 있어 쌍바위라 불렀다. 하나는 여중 운동장과 현 외곽도로 사이에 있었고 , 하나는 현 앞 校舍(교사)의 동쪽 부분에 있었는데, 대천여중 건설로 교문 안쪽 정원에 모두 옮겨 놓았다.

아랫갈머리

대천여중 뒷산에서 소미에 이르는 지역이다. 관촌(冠村)이라고도 불린다. 선조32년 예조판서를 지낸 영의정 이산해의 손자되는 果菴公(과암공)의 묘소가 있고, 묘소 밑에 12대 370여 년간을 살며 9대 진사를 지냈다는 진사댁(進士宅)이라고 불리는 古宅이 있다.

풍수설에서 말하는 이곳의 형상은 渴馬飮水形(갈마음수형)이라고 한다. 또 봉황산 연봉이 12봉인데 이것은 용의 꿈틀거림이요, 여기 아랫 갈머리는 용의 머리에 해당한다고도 한다.

옛날 이토정 선생이 이곳에 鐵道(철도)가 달릴 터이니 철마가 나타나 거든 후손들은 이곳을 떠나라고 했다는 전설이 있다. 소설가 이문구 선생의 고향이기도 하다.

양지편

소미의 서쪽 지역이다. 맞은편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햇볕을 많이 받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욕가티

대천여중 뒤 계곡이다.

우묵골

대명중학교 옆 골짜기이다.

응달

소미의 동쪽 지역으로 북서향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지장모탱이

아랫갈머리에서 소미로 이어지는 모퉁이로 철도와 도로가 지나고 있으며, 길 옆으로 비석 몇 개가 서 있는 곳이다. 이곳에는 과거 에 큰 성황당이 있어 소미 갈머리 사람들이 서낭제를 지냈다. 서낭의 돌무덤 규모는 2평 정도였고 神樹(신수)로는 작은 소나무가 서 있었다. 이 서낭 외에도 아랫갈머리에는 소미로 넘어가는 고개인 현 보령교육청 뒤에 작은 성황당이 있었다.

할미바위

갯뻘모탱이 앞에있는 간척사업 이전에는 갯펄에 돌출해 있던 바위이다. 옛날에는 1000여평의 면적으로 되어있었고 주변에 사는 주민들이 갯펄에서 능쟁이를 잡고 너문재나물(해초)를 뜯다가 근처의 유일한 바위인 이 곳에서 도시락을 먹고 쉬어가던 곳이다.

맞은 쪽의 갯뻘모탱이에는 옹달샘이 있어 물을 떠다 먹곤 하였다. 간척으로 육지화되어 농지개량조합 소유로 있다가 개인에게 불하되어 현재는 김공장이 있고, 대천 방조제 준공 기념비가 서있다. 옛날 갱구 할머니가 주교면 용머리에서 왕대산으로 바다를 건너 왕래할 때 이 바위에서 쉬어갔다는 전설이 있다.

담당부서 :
대천2동
담당자 :
김유리
연락처 :
041-930-4892
최종수정일 :
2019-05-31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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